제주해녀, 살아있는 문화유산을 품다[현대해양, 2024.12.16.]
◎ 제주해녀, 살아있는 문화유산을 품다 [현대해양, 2024년 12월 16일] ○ [현대해양] 척박한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제주여성 ○ ‘숨비소리’ - 해녀들이 숨을 참고 바닷속으로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고 물 밖으로 나올 때 내뿜는 숨소리를 말함 : 이것은 바로 해녀들의 힘겨운 삶의 상징임 - 화산섬 제주 :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뿐 아니라 바람, 돌이 많았던 척박한 자연환경임 : 농사짓기가 어려운 반면, 바다연안 현무암 지대에는 바다생물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임 : 역사적으로도 외부의 침입과 더불어 크고 작은 민란도 있었으며, 척박한 환경으로 바다와 싸우고 풍해, 흉작 등을 걱정하며 늘 풍요롭지 못했음 : 절대적으로 부족한 식량을 바다 자원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해안선을 따라 발달한 마을어장에서는 여성들의 채취활동이 왕성하게 이루어졌음 - 제주의 여성들 : 아침부터 물을 길어오고, 밭일을 하며 물때가 되면 바다에 가서 물질을 하는 등 제주여성의 삶은 매우 고단했음 : 가족을 위해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제주여성의 삶이 곧, 해녀의 삶임 - 제주해녀는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음 : 역사적으로 남성의 몫이었던 전복 진상의 역을 도맡아 왔음 : 제주를 벗어나 한반도 연안, 일본, 중국, 러시아 등지로 진출하여 바깥물질을 통해 제주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였음 :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는 해산물 판매의 부당함에 맞서 일제에 대항하는 항일운동을 벌이기도 하였음 ◇ 해녀의 역사 - ‘해녀(海女)’ : 아무런 기계장치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잠수하여 전복·소라·미역 등의 해산물을 직업적으로 채취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이름 : 해녀들의 하는 일을 ‘물질’이라고 함 : 물질은 『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섭라(제주)에서 야명주(진주)를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임 - 조선시대 기록에는 남자인 포작인(鮑作人)들이 전복을 채취해 진상해 온 것으로 나와 있음 : 1629년 이건의 「제주풍토기」에 해녀(잠녀潛女)들이 미역과 전복을 채취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음 : 해녀에 대한 기록은 이익태의 『지영록』,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등의 여러 문헌자료에 나타나고 있음 ◇ 제주해녀의 바깥물질 - 1883년 <재조선국일본인민통상장정> 이후 : 일본인들이 제주도 연안에서 잠수기선으로 전복 등 해산물을 무더기로 잡아 어장이 황폐화되었음 : 일본의 해조업자는 상품 가치가 높은 우뭇가사리 작업을 위해 제주해녀들을 모집하여 타지역으로 바깥물질 나가기 시작하였음 : 이후 제주해녀들은 한반도 연안뿐만 아니라 일본 곳곳, 중국의 대련과 청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진출하게 되었음 : 1910년대 전반기에 출가한 사람은 약 2,500명에 달했으며, 1910년 말에는 부산, 울산에 4,000명 이상의 해녀가 바깥물질에 나섰음 - 제주해녀들의 바깥물질은 제주도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음 : 1929년 제주도해녀어업조합 연혁에 의하면, 이 무렵 제주도 내에서 해녀 7,300명이 약 25만 엔의 어획고를 올렸음 : 이에 비하여 출가해녀는 3,500명으로 50만 엔 정도를 벌어들였고, 도내해녀의 반에도 못 미치는 출가해녀가 그 2배를 올렸음 ◇ 제주해녀, 대한민국 독도를 지켜내다 - 일제강점기인 1935년, 일본 어민에게 고용되어 울릉도와 독도 어장까지 바깥물질을 했음 - 1935년 일본 죽도어렵합자회사가 독도에서 조업한 결산 내용인 「수지결산서」 : 독도에서 제주해녀들이 전복을 채취했으며, 해녀 4명에게 600엔을 지급하였다고 기록되었음 - 1936년 울릉도 풍광을 묘사한 조선일보 신문기사에는 제주도 해녀가 물질을 준비하는 사진이 실렸음 : 1941년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기자가 찍은 사진에는 독도의 동도 몽돌해안에서 일본인 어부와 제주해녀 4명이 같이 찍은 사진으로 당시 일본이 독도에서 강치 어획과 나잠어업을 운영한 사실을 알 수 있음 -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 독도 의용수비대와 울릉도 어민들의 요청에 따라 매년 수십 명씩 독도 어장에서 미역과 전복 등을 채취하며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의 영유권 강화에 기여한 숨은 주역들임 : 제주해녀들은 독도에서 마땅한 거처도 없이 물이 나오는 서도의 물골에서 가마니를 깔고 얇은 군인 담요를 덮고 잠을 잤으며, 나무판자를 2층으로 올린 임시막사를 만들어 생활하였음 : 기상악화로 보급이 끊어져 식량이 떨어지면 괭이갈매기의 알을 주워 다 삶아 먹기도 하며 고된 물질을 이어갔음 - 현재 협재리 마을회관에는 ‘울릉도 출어부인 기념비석’이 세워져 있음 : 울릉도와 독도에 출어한 해녀들을 기리기 위해 1956년 비석을 세웠고, 비석의 뒷면에는 당시 출향했던 해녀 2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음 - 해녀들 : 독도의용수비대와 독도경비대와 의지하며 경비 활동에 필요한 물품 운반, 식수 보급, 식량 조달 등을 도왔으며 독도 시설물 건립에도 참여했음 : 특히 1982년 독도 서도 정기순찰을 끝내고 복귀하던 전마선이 전복되어 순경 2명이 순직했을 당시 시신 인양에 직접 참여하여 경찰청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음 : 1970년대에는 숙소 및 선착장 등 정주시설을 지을 때 최종덕을 도와 함께 건설에 앞장서기도 했음 : 이와 같은 제주해녀들의 활동은 독도 어업권을 지키고, 독도 영토의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음 ◇ 해녀 공동체 - 제주해녀들은 끈끈한 사회적 연대를 통해 해녀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음 : 제주도에는 수산업협동조합에 소속된 마을 단위의 어촌계가 100여 개 있는데 해녀들은 어장을 ‘바다밭’이라고 함 : 바다밭의 관리와 마을어장 규약을 어촌계, 해녀회 단위로 정해놓고, 어장의 경계, 해산물의 채취자격, 해산물 종류에 따른 채취방법과 채취기간 및 금채기간 등을 엄격하게 운영하고 있음 - 물질작업은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함 : 함부로 바다에 뛰어들어 혼자서 물질을 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정해 놓은 규약과 법에 따라서 행동해야 함 : 물질할 때는 역시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작업에 임하게 되며,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공동으로 위험상황에 대처할 수 있음 : 해녀들은 그 집단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음 - 현재 제주해녀들은 100여 개 마을의 어촌계에 소속되어 각 마을어장에서 물질을 하고 있음 : 해녀의 소득은 가정경제의 큰 몫을 담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지금까지 제주도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음 ◇ 국내외에서 다양한 문화유산으로 지정 - 해녀는 아무런 장치 없이 맨몸으로 잠수해 전복, 소라, 미역, 우뭇가사리 등 해산물을 직업적으로 채취하는 여성들임 :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는 독특한 생활방식임 : 자연과 관련된 생태지식과 물질기술, 물질도구, 불턱과 신앙의 공동체 문화, 해녀노래 등 이들이 함께 영위해 온 문화적인 가치가 큼 - 제주해녀 :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적 조업방식, 생태 환경에 대한 민속지식과 세대간의 문화전승, 주체적 여성 문화, 배려와 질서의 공동체 등 독특한 문화를 이룩했음 : ‘제주해녀문화’는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음 - 2023년에는 UN세계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등재되었음 : 자연과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전통어업, 마을어장의 생물종 다양성과 해양생물의 생육상태를 고려한 채취어업, 공동체의 상생을 강조하는 사회조직과 문화체계, 반농반어의 경제활동을 높이 평가하여 등재되었음 ◇ 제주해녀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상징, 해녀박물관 - 제주해녀문화를 압축적으로 보고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해녀박물관의 상징성이 큼 : 박물관이 위치한 구좌읍 하도리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과 민족적 차별에 항거하여 일으킨 해녀항일운동이 일어났던 지역임 : 제주해녀의 강인한 개척 정신을 계승·발전 시키고, 제주해녀문화 전승·보존에 이바지 하고자 2006년에 해녀박물관을 건립하게 되었음 - 제주 해녀박물관 : 총면적 67,449㎡ 규모에, 연면적은 4,958.2㎡(지상4층)임 : 3개의 전시실과 영상실, 전망대, 수장고, 공연장 등으로 시설되어 있음 : 야외광장에는 1930년대 해녀항일운동을 기리는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과 대표 해녀 3인의 흉상이 세워져 있음 - 해녀박물관은 해녀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전승보존하고 해녀문화를 널리 선양할 수 있는 중추적인 기관임 : 제주해녀의 생애를 집대성한 해녀의 정신과 문화를 관광 자원화하고, 제주해녀의 삶과 역사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보존 관리하며, 해녀자료의 학술조사, 강연, 교육, 전시 및 문화예술 활동에 이바지 하는 역할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 - 개관 초기에는 제주해녀 및 해녀박물관 홍보를 위한 사진 전시회를 도내외 100회 이상 개최하여 해녀박물관을 널리 알렸음 : 2020년 이후에는 해녀항일운동, 독도 출향물질 등 해녀의 역사와 가치 정립을 위한 기획 특별 전시가 진행되었음 - 제주해녀를 좀 더 쉽고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다채로운 교육과 문화행사를 운영하고 있음 : 교육과 행사는 어린이, 청소년, 성인, 가족 등 대상을 차별화해 운영하였으며, 직접 관찰하고 움직이는 참여형 컨텐츠들로 구성됨 : 매년 박물관 정체성 확립을 위한 해녀 및 민속 자료 수집으로 6,000여 점의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이중 460점이 전시되고 있음 : 제주해녀의 역사 및 삶과 문화를 학술적으로 조사연구한 자료집, 조사보고서, 전시도록 등 도서 17권 발간하였음 - 해녀축제가 2007년부터 매년 동안 해녀박물관 일원에서 개최되고 있음 : 제주해녀의 자긍심 고취 및 세계 유일의 여성공동체 문화인 해녀어업문화를 보전하고 홍보하기 위한 대표행사임 : 2017년 해녀의 날을 지정하여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에 해녀의 날 기념식과 해녀축제를 진행하고 있음 ◇ 지속 가능한 해녀어업·해녀문화 보존을 위하여 - 해녀어업·문화의 고유한 가치는 국내외에서 인정받아 후대에게 계승해야 할 중요한 유산이며, 세계적으로도 높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음 - 매년 해녀의 수는 감소하고 있으며, 급속히 노령화 되고 있음 : 마을어장의 자원 감소, 신규해녀 부족 등 어려운 작업환경으로 고된 물질을 이어가는 제주해녀들은 지속 가능한 해녀어업을 보존해 나가는데는 어려움이 많음 : 특히 최근 기후변화 영향 등으로 마을어장내 갯녹음 현상이 지속되고 수산자원이 고갈되면서 마을어장의 소득 감소로 이어져 해녀들의 어업활동 여건은 악화되고 있음 : 바다 생태계 보전은 인간의 힘으로 지키기 어려운 일이지만, 지속 가능한 해녀어업을 위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자원 조성에 힘써야 할 것임 - 이러한 상황에서 해녀들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해녀문화를 알리는 주체가 되어 다양한 활동에 참여해야 함 : 현업 및 은퇴해녀들에 대한 존경과 그들의 가치를 인정해주기 위한 해녀문화에 대한 재정립으로 단순한 직업으로서의 해녀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해녀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문화활동 기회를 확대해야 할 것임 : 해녀문화의 지속 가능한 전승보전을 위하여 해녀들이 직접 작가가 되어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하는 문화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해녀문화 교육 및 강연, 콘텐츠 제작 등 직접 해녀문화를 홍보하는 주체가 되는 활동을 이어간다면, 해녀들의 가치와 위상은 저절로 높아질 것임 ○ 링크 - 제주해녀살아있는문화유산을품다[현대해양, 2024.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