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모친의 고조부, ‘독도 日 편입’ 설계자였다[동아일보, 2026.02.23.]

  • 등록: 2026.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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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모친의 고조부, ‘독도 日 편입’ 설계자였다
김영수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장
“1876년 시마네현 현령 부임 사토… 내무성 독도 편입 시도 총체 지휘”
‘反정한론 현실파’ 노력에 결국 무산 / 26일 독도 학술회의서 논문 발표
[동아일보, 2026년 2월 23일]

○ 1876년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려 시도했던 일본 시마네현의 현령 사토 노부히로(佐藤信寛·1816∼1900)

- 아베 신조(安倍晋三·1954∼2022) 전 일본 총리의 외가 쪽 5대 조부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음
: 사토는 ‘한반도를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에게 병학(兵學)을 전수한 인물임
: 일본 팽창주의의 깊은 뿌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됨

-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장
: 발표 예정인 논문 ‘1877년 태정관지령 제223호와 그 인물들’에서
: “아베 전 총리의 국가관과 사상은 어머니 아베 요코(安倍洋子)의 고조부인 사토로부터 시작된다”며 이같이 밝혔음

● “사토, 독도 편입 시도 총체 지휘”

- 근대적 지적(地籍) 편찬을 추진하던 일본 내무성
: 1876년 10월 시마네현에 죽도(竹島·울릉도)에 대한 기록이나 고지도를 조사해 보고할 것을 지시했음
: 시마네현은 울릉도와 독도의 지적 편찬에 관한 질의서를 내무성에 보냈음
: 과거 돗토리번의 상인이 막부의 허가를 받아 죽도를 개척했다면서, 죽도와 또 하나의 섬(外一島)을 시마네현의 관할에 포함해야 하는지를 묻는 내용이었음
: 여기서 ‘또 하나의 섬’이 독도임
: 형식은 ‘질의’지만 근대 일본이 처음으로 독도를 편입하려고 했던 것으로 평가되는 사건임

-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야욕은 뿌리가 깊음
: 일본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인 요시다는 나중에 혁명의 핵심 인물이 된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1833∼1877)에게 1858년 보낸 편지에
: “우리 번(조슈·長州, 지금의 야마구치현)이 조선 만주를 지배하는 것이 가장 좋다. 조선, 만주를 지배하려면 죽도(울릉도)는 제일의 대기실”이라고 쓰기도 했음

- 이 질의서 발송 당시 시마네현 현령이 그해 4월 임명된 사토였음
: 난(亂)을 진압하기 위해 현청을 비운 상태여서, 질의서는 대리 참사 사카이 지로(境二郞·1836∼1900)가 보냈음

- 김 소장은 논문에서
: “울릉도와 독도 편입 시도의 ‘몸통’은 사카이였지만 명분과 전략을 구상하고 총체적으로 지휘한 ‘머리’는 사토였다”
: “사토는 ‘정한론의 심장’으로 불리는 요시다와도 닿아 있다”고 밝혔음
: 김 소장에 따르면 조슈번 출신의 무사인 사토는 1852년 ‘병요록(兵要錄)’을 요시다에게 전수하는 등 그의 스승이자 조력자로 활동했으며, 1862∼1864년 조슈번의 해안 방어를 총괄하기도 했음

- 그로부터 약 150년이 흐르는 동안 사토의 팽창주의는 후손으로 이어졌음
: ‘A급 전범’ 혐의로 구속됐다가 나중에 일본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가 사토의 증손자임
: 기시의 외손이 일본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로 명기시키는 등 도발을 되풀이했으며, 현대 일본 강경 보수파의 상징이 된 아베 전 총리음
: 아베 집안의 이 같은 내력에 대해선 기존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사토가 독도를 편입하려 했던 시마네현 현령과 동일 인물이라는 건 적어도 국내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음

● “영토 진실 직시한 이와쿠라의 용기”

- 하지만 시마네현의 ‘질의’는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음
: 조선과의 외교 문서를 5개월간 면밀히 조사한 뒤 1877년 3월 태정관(太政官·과거 일본 최고 국가기관)은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 공식 선언하는 ‘지령’을 내렸음
: 이 ‘태정관 지령’은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핵심 사료 가운데 하나임

- 김 소장에 따르면 내무성에서 최종 문서 작성을 주도한 인물은 근대 우편 제도 창설을 추진한 마에지마 히소카(前島密·1835∼1919) 차관보였음
: “죽도와 송도(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담은 문서를 상신한 것임
: 태정관 지령에 도장을 찍어 해당 문서가 일본 정부의 공식 결정임을 드러낸 대표적 인물 중 하나는 ‘이와쿠라 사절단’(1871년)으로도 잘 알려진 우대신(右大臣) 이와쿠라 도모미(巖倉具視·1825∼1883)였음
: 이와쿠라는 무력에 기반한 정한론을 배격하고, 국가의 내실을 우선시했던 현실적인 정략가였음

- 김 소장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는 아베 가문의 배타적 내셔널리즘이 아닌 역사 앞에 겸허했던 이와쿠라의 길을 선택해 미래로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밝혔음

- 이번 논문은 시마네현이 22일 개최한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 이후 동북아역사재단이 26일 여는 학술회의 ‘역사적 문헌으로 본 독도’에서 발표됨

○ 링크 - 아베모친의고조부독도일본편입설계자였다[동아일보, 202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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