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울릉도와 독도 조선영토 기록→일본측 역사 기록에서 또 밝혀져[경북도민일보, 2026.03.23.]
◎ 단독:울릉도와 독도 조선영토 기록→일본측 역사 기록에서 또 밝혀져 하마다번 소속 어선 선주 가이즈야 하치우에몬 유언 문서에 남아 울릉독도 밀업 금지 어기다 처형된 일본 어민-러일 전쟁시기에는 영웅으로 재평가 [경북도민일보, 2026년 3월 23일] ○ 하마다번 가이즈야 하치우에몬 유언 문서 - 일본 에도막부 시기 울릉도와 독도에서 밀업을 하다 처형된 일본 어민이, 러일 전쟁 시기 때부터 지역을 위한 인물’로 미화되면서 영웅으로 추대된 사실이 최근 확인됐음 - 22일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 최근 일본 현지 연구조사에서 밝힌 일본 시마네현 하마다시 지역 기록과 관련 문헌을 공개했음 : 하마다번 소속 어선 선주 가이즈야 하치우에몬(會津屋八右衛門)은 일본 어선 선주 가이즈야 하치우에몬이 당시 양섬(울릉도.독도)은 조선이 버려둔땅이니 일본어부가 고기를 잡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긴 보관 문서를 발견했다고 밝혔음 - 일본 어선 선주 하치우에몬 : 조선영토 울릉도와 독도 일대를 무단 출입하면서 금지된 벌목과 어업 활동을 벌이다 적발돼 사형을 당했음 : 러일 전쟁당시 일본 정부는 울릉도 금지령에 따라 독도까지 일본인들이 접근을 못했다는 (외무부장관앞으로 보낸 공문서)도 찾았음 - 당시 에도막부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일본 어선의 출입을 금지했음 : 이는 17세기 후반 조선 어민 안용복과 박어둔이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주장한 이후 내려진 일본의 조치임 : 실제로 1693년 울릉도에서 조선과 일본 어민 간 충돌이 발생한 뒤, 막부는 일본 어선의 출입을 금지했으며, 이 조치는 메이지 시기 이전까지 유지된 것으로 전해짐 : 특히 당시 치우에몬 처형 후 관리 책임을 물은 관련 인사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한 자료(경북 도민일보 2월 22일자 한일문화연구소독도, 명백한 조선땅… 日 비밀문서 발견)를 게재했음 -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태평양전쟁 시기를 거치며 : 하치우에몬이 벌인 한국영토 침입에 다한 사실을 궁핍한 일본 지역 경제를 위해 금지된 바다에 나섰던 인물’로 재해석 했음 : 특히 1938년(소화 13년)에는 시마네현 하마다시 포구에는 그의 공적을 기리는 송덕비까지 세웠음 : 비문에는 “재정이 어려운 하마다 사람들을 위해 울릉도와 죽도에 들어가다 처형된 인물”이라는 내용을 담았음 : 일부 자료에는 하치우에몬이 처형 당시 “울릉도와 독도는 버려진 땅이니 일본 어부들이 이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유언을 남겼다는 기록도 확인됐음 -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와 일본역사 전문가들 : 이 같은 사례가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과거 인물에 대한 평가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한 대표적인 예라고 분석함 : 특히 일본 측 문헌에서도 당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일본 어선의 접근이 금지됐다는 내용이 확인돼, 해당 시기 두 섬이 조선의 영토로 인식됐음을 보여주는 공식적인 자료로 주목됨 ○ 링크 - 울릉도와독도조선영토기록일본측역사기록에서또밝혀져[경북도민일보, 202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