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역사문화 리포트] 25. 멀리 울릉도·독도가 보인다[강원도민일보, 2024.05.24.]
◎ [동해안 역사문화 리포트] 25. 멀리 울릉도·독도가 보인다 [강원도민일보, 2024년 5월 24일] □ 울릉도와 독도는 한몸처럼 엮인 공동체 섬 ◇ 세종실록지리지 등 두 섬 존재 기록 - 신라 장군 이사부가 정벌한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하는 해상 왕국이 이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음 : 날씨가 화창한 날,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섬의 존재를 우산국 사람들이나 이사부가 간과했을 리 없고, 역사서에도 울릉도와 독도를 하나의 공동체 섬으로 보는 기록들이 무수히 등장하기 때문임 -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삼척도호부 울진현 기록에는 독도에 대해 관리, 통치권을 행사했음을 알게 하는 분명한 사실이 등장함 :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에서부터 울릉도 일원의 면적과 지리, 역사, 토산품 등을 적으면서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두섬이 (울진)현의 정동(正東) 해중(海中)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고 한 대목임 - 필자가 예전에 울릉도를 취재할 때 접한 울릉문화원 이우종 전 원장, 이를 두고 : “두 섬은 독도와 울릉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 “울릉도 주변의 죽도나 관음도 등은 날씨와 관계없이 언제나 울릉도에서 볼 수 있는 데 반해 날씨가 맑아야 볼 수 있는 섬은 독도 밖에 없다” : “울릉도는 물론 독도까지 당시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조선시대 군·현제의 틀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음 - 1530년에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 기록에도 ‘세 봉우리가 하늘로 곧게 솟아 있는데, 남쪽 봉우리가 약간 낮음 : 날씨가 청명하면 봉 머리의 수목과 산 밑의 모래톱까지 역력히 볼 수 있음 : 순풍이면 이틀에 갈 수 있다’는 기록이 등장해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본 모습을 훨씬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음 : 여기서 세 봉우리가 등장하는데, 이는 조선 성종(1472년) 때 박종원이 삼봉도 경차관(三峯島敬差官)으로 임명됐던 것과 결부시켜 생각해 볼 수 있음 : 당시 임금이 ‘우리 봉역(封域) 내에 있다’며 박종원에게 살피도록 한 삼봉도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세 봉우리가 솟아 울릉도에서 이틀이면 갈 수 있는 독도를 지칭한 것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음 - 이처럼 조선시대 지리지들은 시대를 거듭할수록 훨씬 상세하게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기술을 하고 있음 : 이는 ‘공도정책’으로 섬을 비워 버려진 땅으로 전락시켰다는 주장이 얼마나 큰 곡해인지를 확연히 느끼게 함 : 울릉군지는 이에 대해 ‘조선이 정부 차원에서 섬에 대해 조사를 지속적으로 시행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음 □ 울릉도 수토(搜討), 삼척영장 장한상도 독도 기록 - 독도 기록은 삼척, 울진 등지의 향토 사료에서도 확인됨 - 숙종 때 수토(搜討)를 위해 삼척에서 군사들을 거느리고 출항, 울릉도를 순찰했던 삼척영장 장한상, ‘울릉도사적(鬱陵島事蹟)’의 보고 기록 : ‘동남동 방향을 보니 멀리 울릉도 크기의 3분의 1 정도로 섬이 보인다’고 밝히면서 ‘그 거리가 300여 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적었음 : 장한상이 보고 기록한 섬이 독도라는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음 : 300여리는 현대식 미터법으로 계산하면 120km : 이는 실제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가 87km라는 점을 고려하면, 과학적인 측정을 하지 않고 눈으로 바라본 거리를 말한 상황에서는 비교적 정확한 거리 측정이라고 할 수 있음 - 조선 정조 때에는 삼척부사를 지낸 윤속 : ‘울릉도 동쪽 망망대해 중에 우청도(羽淸島)라는 섬이 있는데, 이를 삼척부 관할로 삼겠다’고 조정에 상신한 내용이 삼척지역 향토사료인 김구혁의 척주선생안(1855년)에 나와 있음 : 울릉도에서 고개를 돌려 망망대해 중에 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독도 밖에 없으니 윤속이 말한 ‘우청도’ 또한 독도를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음 □ 동해안 육지에서 울릉도를 본 기록도 즐비 ◇ 삼척 소공대 등 고지대에서 울릉도 조망 - 육지인 동해안에서 울릉도를 바라본 기록도 전해지는 것이 참으로 많음 : 요즘은 육지에서 육안으로 울릉도를 보는 것이 쉽지 않음 : 미세먼지 등 오염원이 적었던 옛적에는 청명한 날에 고갯마루 등 고지대에서 울릉도를 보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옛 선인들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음 - 고려시대에 두타산 일원에 은거하면서 민족의 대서사시인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한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 선생 : 몽골 침략 때 주민들과 함께 요전산성(蓼田山城)에 들어가 항거하면서 ‘맑은 날 울릉도를 보았다’고 동안거사집에 남겼음 - 고려말-조선초의 문인인 운곡(耘谷) 원천석 : 울진에서 삼척지역으로 넘어오면서 지현(知峴)이라는 곳에 올라 울릉도를 바라보면서 시(詩) ‘등지현망울릉(登知峴望蔚陵)’를 읊기도 했음 - 현재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와현(瓦峴) 소공대(召公臺) :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숱한 문사들이 울릉도를 바라보면서 시를 읊은 명소로 손꼽히기도 함 - 이런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울릉도와 독도는 고지도에서 거의 예외 없이 강원도 동해안과 경북 동해안의 부속 도서 형태로 표현됨 :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울릉도·독도 수호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음 - 고려대 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지도(地圖·1800년대 중엽)’ 라는 이름의 지도 : 삼척부를 소개하면서 거의 같은 비율로 울릉도를 더불어 기재, 조선시대에 울릉도가 삼척의 영역에 포함됐다는 것을 명확히 설명해 줌 - 삼척시립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울릉도 도형(圖形·조선 후기) : 울릉도·독도에 무리를 이루고 살았던 가지어(可之魚·강치)와 향나무(香板), 주토(朱土·붉은 색 황토) 등을 특산품으로 명기함 : 조정에 봉납 대상이라는 기록도 함께 명기, 울릉도에 대해 조선시대 사람들이 상세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줌 - 영남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천하지도(18세기 중엽)도 강원도 편에 울릉도를 표기하고 있음 - 서울대 규장각의 팔도지도(1767년∼1778년)와 국립중앙도서관의 해동전도(제작시기 미상) : 삼척 동쪽바다 가까이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를 함께 그려 넣은 점이 특징적임 - 지도상의 이 같은 기록들은 다음과 같은 기록 등을 뒷받침해 주는 사료들임 : 조선 세종실록에 ‘삼척부 바다 한가운데 요도(蓼島)가 있다’고 한 기사 : 조선 선조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가 남긴 아계유고(鵝溪遺稿) 울릉도설 편에 ‘가을과 겨울이 교차할 때쯤 삼척의 소공대에서 울릉도가 보인다’고 한 기록 등 - 이산해 : 조선 중종∼광해군 때 문신(1539-1609년)으로, 대사간, 대사헌, 이조판서와 삼정승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한 인물임 :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던 해에 탄핵을 받아 울진 평해에 유배돼 많은 시문을 남겼음 : 허균이 ‘그의 시는 평해에 귀양 가서 절정에 달했다’고 평가하기도 했음 : 이산해가 가을과 겨울이 교차할 때라고 한 것은 아마도 11월 초·중순, 톡하고 건드리면 쨍하고 금이 갈 것 같은 쾌청한 늦가을 혹은 초겨울일 것임 - 육지에서 울릉도를 보고, 울릉도에서는 독도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동해안과 울릉도·독도가 한 몸처럼 엮여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임 : 육안으로 울릉도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삼척, 울진, 강릉 일원이 줄곧 울릉도·독도를 잇는 통로가 된 것은 역사에서 당연한 귀결이었음 (최동열 강릉본부장) ○ 링크 - 멀리울릉도독도가보인다[강원도민일보, 2024.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