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조선시대 독도의 공식적인 명칭은 '우산도'임

현재 남아 전하는 우리나라 기록 상, '독도'라는 명칭은 1906년 울도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됨

독도 명칭의 의미와 변화 과정

우산도(于山島)

신라 지증마립간 13년(512)에 이사부가 부속한 우산국에서 비롯된 칭호로 추측됨

조선전기 지도에는 울릉도 서쪽에 우산도를 그려넣음

정상기(1678~1752년)의 「동국지도」를 필사한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이후의 지도에는 울릉도 동쪽에 작게 그려짐

우산도의 ‘우(于)’자를 잘못 기록하여 자산도(子山島), 천산도(千山島), 방산도(方山島), 간산도(干山島) 등으로도 불림

「해좌전도」(19세기 중엽)의 울릉도와 우산도(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해좌전도」(19세기 중엽)의 울릉도와 우산도(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석도(石島)

‘돌섬’을 한자로 표기한 명칭

1900년 10월 27일자 「관보」에 게재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울릉도를 울도군(鬱島郡)으로 개칭하고 울릉 전도(鬱陵全島),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하게 했는데,
죽도는 울릉도 동쪽 가까이에 있는 지금의 죽도[댓섬]이고, 석도는 독도를 가리킴

독도(獨島)

‘돌섬’에서 연유한 칭호

19세기 말 울릉도에는 전라남도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가장 많았는데 이들은 ‘돌’을 ‘독’이라고 불렀고, 울릉도를 개척하면서 들어왔던 강원도와 경상도 사람들도 ‘돌’을 ‘돍’이라고 부름

‘돌섬 → 독섬 또는 돍섬 → 독도’가 되었고, 독도를 한자로 표기하여 ‘독도(獨島)’라고 불렀던 것으로 추측됨

지금 남아 있는 기록 가운데 ‘독도’라는 호칭이 처음 보이는 것은 일본 군함 니이다카[新高]호 「행동일지(行動日誌)」로, ‘울릉도 한인(韓人)들이 ‘리앙코루도암[リアンコルド岩]’을
독도(獨島)라고 쓴다.’(1904. 9. 25.)고 기록했음

우리나라 기록으로는, 1906년 3월 29일 울도군수 심흥택이 강원도관찰사서리 춘천군수 이명래에게 올린 보고서에서 “본군 소속 독도(獨島)”라고 하여 ‘독도’ 칭호가 처음 보임

「보고서 호외(報告書 號外)」(1906.4.29.)

「보고서 호외(報告書 號外)」(1906.4.29.)

강원도관찰사서리 겸 춘천군수 이명래가 대한제국 정부에 올린 보고서. 울도군수 심흥택이 이명래에게 올린 보고 내용 가운데 ‘본군 소속 독도[本郡所屬獨島]’라고 하여 독도가 울도군(鬱島郡) 소속임을 분명히 밝혔음(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