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권 기자의 세상 보기]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한국령(韓國領)’도 한몫했다[헤럴드경제, 2025.02.17.]
◎ [김성권 기자의 세상 보기]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한국령(韓國領)’도 한몫했다 [헤럴드경제, 2025년 2월 17일] ○ 매년 이맘때면 ‘독도’가 주목받음 -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을 불법 지정한 날이 바로 2월 22일이기 때문임 : ‘다케시마의 날’은 시마네현이 지난 2005년 제정해 2006년부터 매년 2월 22일 여는 행사임 :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쳐온 일본 정부는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출범 직후인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 연속 차관급인 정무관을 이 행사에 참석시켰음 : 오는 22일 시마네현에서 열리는 ‘제20회 다케시마의 날 기념식’ 에는 일본 정부 관계자와 초청객, 시민 100명 등 약 500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음 - 일본이 아무리 떠들어도 유구한 세월 속에 거대한 수반을 받쳐놓은 듯한 독도는 꿈쩍하지 않음 : 바로 독도 동도 경비대 막사 아래 절벽에 새겨진 바위 글씨, ‘韓國領’(한국령)이 독도를 지키고 있기 때문임 :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역사적 문헌도 중요하지만 ‘한국령’ 세글자가 부여하는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하겠음 - TV 화면에 서라도 한 번쯤 본적이 있는 ‘한국령’ 글씨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음 : 그렇다면 과연 누가 독도 절벽 암벽에 붙어 글씨를 새겼을까 ? - 1954년 당시 울릉도에서 명필로 꼽히던 고(故) 한진호 씨가 바로 그 주인공임 : 이 글씨를 쓰고 또 직접 새겼다고 함 - 유명 서예가 박덕준(64) 씨 : ”정작 그 글씨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쩌면 서예가의 글씨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도 모자라 아직 한 번도 서예가의 작품이라고 소개된 적이 없는 듯 해 너무도 아쉽다”라고 했음 : ”‘韓國領’(한국령)의 작품은 건물의 외벽 정도가 아니라 ‘바다에서 보는 바위섬 벽면의 글씨’로 바다에서 보이는 바위 글씨가 마치 눈앞에 써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작가는 이런 상황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고 판단했다. 특히. 필획과 결자와 기타 서예적 테크닉 또한 상당한 경지에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령임을 선명하게 주장하고자 하는 그의 애국심 이 한 획 한 획에 깊이 서려 있고 강한 직선의 필획과 웅장하면서도 티 없는 맑음이 있는 ‘韓國領’ 은 보기 드문 수작이다“고 평가했음 : ‘바다에서 보는 바위섬 벽면의 글씨’ 이 사실만으로도 한국의 서예사에 남아야 할 일이라는 게 박 서예가의 설명임 - 수년 전 독도박물관이 독도 현지에서 각 석문 전수조사를 진행했음 : 그 결과 독도경비대 앞 암벽의 ‘韓國領’, 부채바위 맞은편 암반면 중턱의 ‘韓國’, 동도 정상부 암반면의 ‘韓國’, 몽돌해변 암반면 중턱의 ‘㭗陵郡 南面 獨島’등 총 4개를 찾아냈음 - 그중‘ 한국령’ 각 석문은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영토 각 석문임 : 이 각 석문이 새겨진 시기, 주체, 제작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음 : 단,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의 수기, 생존 독도의용수비대 원의 증언, 그리고 몇몇 신문 기사 등에 관련 내용이 단편적으로 확인되고 있음 : 특히, 제작 주체와 관련, 여러 의견이 제시되고 있음 - 일반적으로는 1954년 6월, 독도의용수비대에 의해 ‘한국령’ 각 석문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음 : 당시 대원들이 바위를 정으로 쪼아 평탄면을 만들고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이 평소 친분이 있던 울릉도의 이북 출신 서예가 한진호 씨(1988년경 작고)에게 부탁해 글자를 새겼다는 것임 : 공공기관의 공식자료 및 여러 신문에서도 이를 전제로 서술하고 있음 - 독도박물관이 고 한진호 씨의 유가족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된 신문 기사는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고 있음 : 그것은 종래 독도의용수비대의 주도로 ‘한국령’이 제작된 것이 아닌, 1954년 당시 정부의 요청으로 한진호 씨가 석공을 동행해 제작했으며 ‘한국령’ 뿐만 아니라 동도와 서도 일대에 4~5개의 영토 각 석을 함께 새겼다는 것임 - 정부 측에서 철저한 보안을 요구해 지금까지 외부에 관련 내용을 발설하지 않았다는 게 인터뷰에서 소개했음 : 유가족의 인터뷰 가운데 ‘한국령’ 각석 외에 4~5개의 영토 각 석을 함께 제작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함 : 실제 ‘한국령’ 각 석문과 부채바위 맞은편의 ‘한국’ 각 석문, 그리고 동도 정상부의 ‘한국’ 각 석문의 서체상 유사점이 발견되기 때문임 - 독도박물관 측 : 독도의 각 석문 ‘韓’자의 끝부분이 모두 좌측으로 휘어진 형태를 보이고 있음 : ‘한국령’과 동도 정상부의 ‘한국’ 각석문에서의 ‘國’자의 경우, ‘幺’를 이용해 ‘或’자를 표현한 특징이 있다고 했음 : 이외에도 글자의 비율, 획의 굵기 등에서 서체의 유사점이 확인돼 실제 각석문의 서체상 특징을 고려해 보았을 때에 ‘㭗陵郡 南面 獨島’를 제외환 나머지 3개의 각석문이 모두 고 한진호씨에 의해 제작됐다고 설명했음 - 지금까지 독도를 방문하는 인사들의 사진 명소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고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쐐기를 박아온 “韓國領”을 쓴 주인공 : 수십 년이 지나서도 독도의 응달진 외로운 곳에 꽁꽁 숨어 있음 - 울릉군과 관계기관은 국민에게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서예 작품(한국령)을 남긴 고 한진호 선생에 대한 평가를 지금이라도 서둘러 그의 공적을 기려야 할 것임 ○ 링크 - 독도가우리땅인이유한국령석각도한몫했다[헤럴드경제, 2025.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