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충진의 독도 다큐]"독도에는 민간인이 살아야"[매일신문, 2026.03.18.]

  • 등록: 2026.03.20
  • 조회: 9

◎ [전충진의 독도 다큐]"독도에는 민간인이 살아야"
김신열 여사가 해준 홍합밥의 추억 "그립습니다"
독도에 들어가 살겠다는 민간인 신청자 많아 / 경비대장, 통신반장, 등대소장도 사람 그리워
[매일신문, 2026년 3월 18일]

○ "파기름장을 한 숟가락 퍼넣어 비벼라"

- 낮에 따온 홍합으로 저녁에 홍합밥을 지었음
: 아이들 손바닥만 한 홍합을 반으로 잘라 솥에 넣고, 참기름을 넉넉하게 둘러 볶았음
: 구수한 김이 술술 오르자 불린 쌀을 넣고 밥을 안쳤음
: 데친 대황(해조류의 일종)을 꽁치젓갈에 버무려 내고, 김성도 이장님, 김신열 여사와 셋이서 홍합밥을 양푼이에 퍼담아 앉은뱅이 상에 둘러앉았음
: 시키는 대로 파를 넣은 참기름장에 비벼서 한 숟가락 떴음
: 맛의 신천지였음. 한 양푼이 다 비우고, 체면 차릴 것도 없이, 남은 밥마저 퍼담아 해치웠음

- 2008년 9월 3일, 울릉읍에서 2098번째로 본적지를 독도로 옮기고 독도상주기자로 들어간 날 저녁, 김신열 여사는 홍합밥을 지어줬음
: 독도 주민으로서 배려였고, 환영이었음
: 그 당시에도 독도 홍합밥은 귀한 음식이었음

- 김신열 여사가 물질 나가 홍합을 따면, 김성도 이장님이 모터보트를 몰고 나가 받아옴
: 오후에는 둘러앉아 그것을 까서, 비닐봉지에 나눠 담음
: 관광선 편으로 울릉도로 보내면 홍합 한 알에 5백 원 꼴이 됨
: 홍합은 독도 김 이장댁 주소득원이다 보니, 끼니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음

- 17년 전 홍합밥을 지어줬던 김신열 여사가 지난 3월 2일 별세했음
: 2018년 김성도 이장이 타계한 후 뭍으로 나와 생활하다가, 노환으로 천명을 다한 것임
: 김성도, 김신열 부부는 1991년 독도로 주민등록지를 이전하고, 2006년 2월부터 독도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음
: 1965년 최종덕 씨가 처음 서도에 슬레이트 블록집을 짓고 거주한 이후, 1986년에 들어간 조준기·최경숙 부부에 이어서, 세 번째 주민이 된 것임
: 독도에서 생활한 주민들은 그동안 '우리 땅 독도' 지키기에 큰 축이 되었음

- 2008년부터 1년 동안 독도상주기자로 생활하는 동안, 독도에는 마을이 있었고, 이웃이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음
: 이제 독도에는 경비대원, 등대원, 독도관리사무원, 119구급대원뿐임
: 이들은 모두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임
: 독도를 생활 근거지로 하여, 바다가 내주는 산물을 젖줄로 하여 일상을 꾸려가는 사람이 없어진 것임
: 사람 없는 동네에서 관리자들끼리 서로 관리하고 있음

- 독도를 하루라도 비워둘 수는 없음
: 지금 독도에 들어가서 살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적지 않음
: 독도를 관리하는 행정관서는 지난날과 같이 독도에 민간인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기반을 재정비해야 함
: 하루 빨리 독도 입주민 선정기준을 만들고, 엄정한 심사를 거쳐 독도에 들어가서 생활할 주민을 정해야 함
: 독도는 대한민국 사람, 민간인이 들어가서 홍합을 따고, '독도카페'도 운영해야 됨

- 그 옛날, 독도경비대원들이 50일 간 독도 근무를 마치고, 울릉도 본대로 복귀하는 전날
: 김신열 여사는 언제나 간부와 고참병들을 서도로 불러다 홍합밥을 지어 먹여 보냈음
: 다음날 독도를 떠나는 경비대원들은 독도 사람들 인정에 눈시울을 붉혔음
: 나중에 육지 나가서도 안부 전화를 하면 늘 독도 홍합밥이 생각난다고 했음
: 독도상주기자 시절 함께 생활했던 강석경 경비대장, 추호 통신반장, 그리고 엄태명 등대소장님
: 우리가 어민숙소에서 홍합밥 비벼 먹던 그때가 '독도리'다웠지 않습니까

○ 링크 - 독도에는민간인이살아야[매일신문,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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