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36.5] 우리 국민 살아야 우리 땅‥3대째 "독도가 고향"[MBC, 2024.08.14.]
◎ [현장 36.5] 우리 국민 살아야 우리 땅‥3대째 "독도가 고향“ [MBC, 2024년 8월 14일] ◀ 앵커 ▶ - 역사 왜곡을 넘어 이젠 독도까지 논란거리로 만드는 일들, 앞서 뉴스로 전해드렸음 : 당연히 우리 땅이라고 막연히 알고 있는 것을 넘어서 오래전부터 독도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분들이 있었음 : 우리 국민이 살고 있는 우리 영토, 3대째 독도가 고향인 가족들, 손지윤 영상기자가 함께했음 ◀ 리포트 ▶ [1983년 뉴스데스크 인터뷰] "<따님하고 함께 사시는 모양인데 말이죠. 곧 결혼하셔야 하겠는데요. 그러면 독도와는 인연을 끊어야겠네요.> 모르겠습니다. 잘." [최은채/고 최종덕 씨 딸] "한 번 가면 6~7개월 못 나오니까. 그때는 탈출만 하고 싶었어요. 저 결혼 일찍 한 것도 독도 탈출하려고 일찍 했는데, 1년 만에 다시 들어갔어요. 그게 내 팔자인가 봐요." - 고향을 떠난 지 어언 32년 : 그 새 딸은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었음 [최은채/고 최종덕 씨 딸] "어업에 종사하셨어요, 아버지가. 계속 아버지 따라서 왔다 갔다 하다가 '독도에 해산물이 많다'는 소리를 듣고, 더 많이 개발할 수 있겠다 싶어서 독도에 들어가셨죠." [고 최종덕/최초의 대한민국 독도 주민] "사는 건 한 (1년 중) 10개월 정도 여기에 사는데" [최은채/고 최종덕 씨 딸] "내가 10대, 20대는 독도에서 다 보냈죠. 어린 나이지만 제가 가서 아버지 밥, 현장 인부들 밥 해 주고." - 주민 숙소가 지어지고 흔적만 남은 옛 집터 : 하지만 아버지와 걷던 길은 그대로임 [최은채/고 최종덕 씨 딸] "이 길 걸으니까 새롭네. (동도에) 전경들 놀러 내려오면, '와~'하면 저쪽에서도 손 흔들고." [최은채/고 최종덕 씨 딸] 처음 갔을 때,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집을 지으면서 점점 터를 넓혀갔죠. 그 시절에는 전기도 없어요. 라디오는 건전지로 듣고. [최은채/고 최종덕 씨 딸] "우리 아버지가 나 혼자 심심하다고, 항상 스피커폰에 트로트를 틀어놨어. 그러면 서도에 우리 아버지가 이쪽에 있구나 저쪽에 있구나 다 알아." [최은채/고 최종덕 씨 딸] "그 위에 지금 표지석 있는 그 자리가 문어 건조장이에요." - "어떻게 올라가요, 이제?" [최은채/고 최종덕 씨 딸] "난 못 올라가요. 한 5년 됐을 거예요, 여기 못 올라가 본 지." [최은채/고 최종덕 씨 딸] "지금은 관리가 안 되어서, 다리도 다 부서지고 올라갈 수가 없는 상황이네요. 참 후회스럽죠.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적었어요." - 회한에 젖은 딸은 뒤늦게 가족사진을 독도 선착장에 걸어봄 [김세은/독도 방문객] "어렸을 때 사진을 보니까 되게 (두 분이) 닮으신 것 같아요." [한주완/독도 방문객] "여기 집을 좀 많이 짓고, 일을 많이 해야 할 거 같아요." - 최종덕 씨 이후 김성도 씨 부부가 주민이 되어 독도에 살았지만, 2018년 김 씨 사망 이후 현재는 공무원과 독도경비대만이 남아음 [조한별/고 최종덕 씨 손녀] "저희 부모님이 사신 곳이고, 외할아버지가 개척한 곳인데, 독도에 주민이 살 수 있게끔 제대로 된 정책도 내놓았으면 좋겠고…" [이범관/경일대 부동산지적학과 교수] "우리 영토를 실효적으로 지배하느냐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데 독도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이 지속 가능하게 살 수 있도록 국가가 행정력을 개입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 최종덕/최초의 대한민국 독도 주민] "여기 주민을 좀 많이 살게 하면 좋겠어요." [최은채/고 최종덕 씨 딸] "(독도에) 1년에 한 번씩 갈 때마다 늘 생각하는데. 독도는 나의 친정이다." - "결혼해서 남편 데리고 아버님 옆에서 살고 싶지 않으세요?" [최은채/고 최종덕 씨 딸] "살고 싶어요." ○ 링크 - 3대째독도가고향[MBC, 2024.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