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한국 땅" 美 '극비 문서' 찾아낸 교수, "종지부 찍을 영상, 분명 있어"[YTN, 2026.07.10]

  • 등록: 202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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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는 한국 땅" 美 '극비 문서' 찾아낸 교수, "종지부 찍을 영상, 분명 있어“
[YTN, 2026년 7월 10일]

○ YTN 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6년 7월 10일 (금)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전갑생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 박귀빈
: 미국 정부의 미공개 기밀 문서에서 '독도는 한국 땅이다' 이걸 명확히 적시한 기록이 확인됐음
: 1948년 독도 폭격 사건을 조사한 미군 보고서에는 '독도는 한국의 일부', 또 1947년 9월 이미 '독도가 한국의 일부라는 것이 분명히 확립됐다' 이런 표현까지 담겨 있다고 함
: 광복 직후 미국이 독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핵심 사료로 평가받고 있음
: 이 자료를 직접 발굴한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전갑생 연구 교수 스튜디오에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음
: 미국에 다녀오신 건가요?

◇ 전갑생
: 미국은 매년 한 두세 번 정도 다니고 있음
: 이 자료를 발굴할 때도 보면 그때도 한 두세 번 정도 다녔던 시기였기 때문에, 평균 한 매년 두 번, 세 번 정도 다닌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음

◆ 박귀빈 : 그러면 이 자료는 언제 가셨을 때 발견하신 거예요?

◇ 전갑생
: 2023년에 처음 이 자료를 확인을 했었음
: 그때는 여순·제주 사건과 관련해 가지고 자료를 검색하는 과정에 '어, 이 자료가 있네' 함을 확인을 했음
: 그때는 국내에서는 자료가 없는 걸로 확인이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자료다'라고 판단을 했었음

◆ 박귀빈 : 근데 왜 알려졌죠?

◇ 전갑생
: 계기가 여러 가지가 있음
: 원래는 제가 그걸 수집해서 정리해 놓긴 했는데, 지난달에 독도연구소와 관련한 분하고 이렇게 만남을 갖게 됐는데 그때 우연치 않게 제가 예전에 이런 자료를 찾았는데 혹시 관심이 있느냐고 했을 때 그러고 난 이후에 동북아역사재단 쪽에 있는 분들하고 같이 미팅을 하면서 새로운 자료라고 해서 이번에 공개가 되었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음

◆ 박귀빈
: 처음에 이 자료를 접하셨던 독도 조사하시는 분들, 연구하시는 분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 전갑생
: 아주 이거는 처음 보는 자료라고 해서, 특히 독도 관계처라든지 이런 국한문 혼용체로 되어 있는 문서는 또 처음 보는 거였음
: 또 특히 독도와 관련돼 있는 영유권에 대한 부분을 명확하게 정리한 문서는 또 이번에 처음 봤기 때문에
: 이거는 앞으로 연구 가치가 되게 높고, 이 부분을 통해서 더 독도 영유권의 문제를 명확하게 규정짓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라고 판단을 하셨던 것임

◆ 박귀빈
: 점점 어떤 자료일지가 굉장히 궁금해짐
: 구체적으로 그 자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떤 자료를 발굴하신 거예요?

◇ 전갑생
: 이 자료는 극동사령부, 일명 우리는 보면 '맥아더 사령부'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1948년 6월 8일에 독도 일대에서 폭격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조업하던 주민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했는데, 그와 관련한 보고서를 정리한 것임
: 그래서 최말단에 있는 실제 폭격을 담당했던 9.3 폭격 전대의 각종 보고서뿐만 아니라 주한미군사령부의 보고서, 그리고 극동사령부의 보고서 이런 식으로 중요한 사령부, 특히 미군의 최고의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 사령부들의 각종 보고서를 해놨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됐던 것임

◆ 박귀빈
: 1947년, 48년 그때 맥아더 사령부, 극동사령부라는 곳이 독도를 당시 독도를 폭격 훈련장, 폭격 사격 훈련을 하는 장소로 사용을 했던 것이고, 그거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을 했겠음
: 그 보고서를 이번에 찾으신 거네요?

◇ 전갑생
: 맞음
:. 그래서 1947년부터 해서, 46년에는 주로 보면 주한미군정청에서 독도 주민들로부터 울릉도 도사라든지 아니면 그때 당시 행정관청에서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걸로 명확하게 하는 각종 보고서를 접수를 받았었고, 그 이후로부터 해서 1948년 폭격 이후에 각종 보고서를 작성을 했음
: 그와 관련한 보고서 안에 과거에 주민들이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명확하게 정리한 보고서까지 첨부해서 종합적으로 정리된 문서철이라고 보시면 되겠음

◆ 박귀빈
: 당시에 거기서 독도를 폭격 훈련장, 사격 훈련장으로 썼던 미군이, 당시에 우리나라 땅이니까 당연히 울릉도 주민이나 강원도 이쪽에 사시는 분들이 독도 가서 조업을 했을 거 아닙니까?
: 그런데 주민들에게 훈련장이라고 말을 안 해서 하다가 사망 사고가 나고 그런 내용까지 포함이 돼 있다는 거잖아요
: 어떤 표현들이 거기 들어가 있습니까?

◇ 전갑생
: 독도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보면 47년 9월달에 한국의 그 독도를 폭격 사격 훈련장으로 지정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한국의 영토임을 밝히는 문구가 들어갔음
: 그래서 한국의 영토라는 부분 중에서 특히 뭐가 있냐면 독도가 한국의 영토의 일부라는 부분과 그다음에 '명확히 확립이 됐다', 즉 쉽게 말하면 독도가 한국의 일부라는 것이 명확하다고 아예 그 단정적으로 기술을 하고 있다는 것임
: 특히 미군 보고서들이나 외교적인 문서에서 보면 단정적인 표현을 잘 쓰지 않음
: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그렇게 보일 것이다'라는 어떤 모호한 표현들이 되게 쓰임
: 이거는 군의 공식적인 문서였기 때문에 '확립되었다'라는 표현은 아주 여러 가지 기존의 어떤 문서와 달리 명확하게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명확하게 기술한, 어떻게 보면 최초의 내용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듦

◆ 박귀빈
: 굉장히 중요한 표현인 거고, 그 표현에 '명확히 확립됐다'라는 표현 자체가 굉장히 무게감이 있는 표현인 거네요

◇ 전갑생
: 그런 셈임
: 기본적으로 국무부라든지 아니면 다른 그때 대사관이 생기기 전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외교관들이 쓰는 표현하고는 전혀 다른, 근데 실제 태평양을 비롯해서 동북아시아 지역에 있어서의 최고 미군 수뇌부에서 작성했던 문서가 독도를 한국의 영토의 일부임을 분명하게, 명확히 확립된다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독도는 그 시기에 미군 군부는 이미 '독도는 한국의 땅이다'라는 거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면 되겠음

◆ 박귀빈
: 근데 이걸 왜 미공개 기밀 문서로 했을까요?
: 일본이 그렇게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고 우리는 우리 땅이라고 계속 그러고 있는 와중에, 미국이 이 자료를 처음부터 공개를 했으면 좋았잖아요
: 왜 이거 비공개였습니까? 그동안 왜 기밀 문서예요?

◇ 전갑생
: 지금도 기밀 문서임
: 지금은 오랜 기간 동안에 48년 6월 이후로 해서 결국에는 49년 그리고 51년, 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맺기 전까지의 그때 당시 일본이 동북아시아의 어떤 정세를 봤을 때에 중요하게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재건의 문제와, 그리고 소련이나 기타 등의 어떤 그 공산주의 세력들을 방어하는 어떤 측면에서 봤을 때에 일본을 더 중요시하는 정책에 따라서 결국에는 한국의 영토에 대한 부분보다는 실질적으로 일본의 어떤 그런 보호 정책에 따라서 결국엔 독도의 영토 문제를 모호하게 표현했던 것이 아닐까
: 그러다 보니까 그게 하나 있고요
: 두 번째로는 훈련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알리지 않고 주민이 사망했기 때문에 그걸 처음에는 3급 비밀로 묶었다가 나중에 다시 맥아더 사령부가 2급 비밀로 다시 상향 조정을 했음
: 그만큼 그때의 사망 사건 자체가 되게 중요했기 때문에 그래서 비밀로 계속 묶어왔던 거다 이렇게 볼 수 있음
: 지금도 왜 비밀이냐 하면은 이 문서를 열람할 때는 열람자가 비밀을 해제한다는 어떤 스티커를 받게 됨
: 그런 것처럼 이 문서는 여전히 완전히 해제돼 있는 상태가 아니라 언제든지 다시 또 기밀로 묶어서 처리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는 문서이기 때문에, 여전히 공개는 하지만 비밀 문서로 유지되고 있는 문서다 이렇게 보시면 됨

◆ 박귀빈
: 문서가 굉장히 방대한 양이라고 앞서 말씀하셨음
: 그중에 이 내용이 포함된 건데, 그 방대한 양이라는 게 한 어느 정도인 거예요?

◇ 전갑생
: 전체 한 300여 쪽 정도, 200여 쪽 한 300여 쪽 되는데 한 책 한 권 되는 양이네요
: 그래서 왜 중요하냐면 이 독도 영유권에 대한 관련한 부분들에 대한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집해서 정리해 놓은 문서철이라는 것임
: 1946년부터 해서 1948년 6월 말까지의 이 독도 폭격 이전부터 이후 그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 보고서까지 포함하니까 양 자체가 되게 방대할 수밖에 없음

◆ 박귀빈
: 이 300여 쪽 되는 그 문서 자체가 당시에 독도를 폭격 훈련장으로 사용했던 그 내용에 대한 내용이 다 담겨 있는 거예요?
: 다 독도에 대한 내용이네요

◇ 전갑생
: 맞음
: 그래서 기본적으로 보면 이 자료는 독도의 사격 훈련하는 과정들뿐만 아니라 그리고 그 폭격 이후에 조사 보고서, 그리고 파일럿의 신문 보고서, 그리고 또 주민들 피해자들에 대한 신문 보고서 등 다양한 정보들이 담겨져 있음
: 그렇기 때문에, 이 자료를 통해서 향후 새로운 연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이 독도의 폭격과 관련되는 문제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전시로도 활용할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겠음

◆ 박귀빈
: 그러네요. 문서철에는 미군 보고서뿐만 아니라 당시 울릉도사가 경북도지사에게 보낸 최초의 독도 관련 공문, 한국 측 문서도 함께 들어 있는 건가요?

◇ 전갑생
: 맞음
: 1946년 4월에 '울릉도 독도의 영유권 확인'이라는 건에 보면, 이 광복 직후 울릉도사가 관할하다, 쉽게 말하면 지금의 울릉군수와 같은 건데요. 그래서 경북도지사에게 보내는 독도가 울릉도 소속임을 7가지를 가지고 이렇게 근거를 내세운 문서가 들어가 있음
: 그리고 독도 영유권 문답서는 울릉도사가 또 미군정 법무관에게 보내는 제출 보고서도 있음
: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해방 이후에 독도에 대한 영유권 문제가 끊임없이 한국의 관리로부터 계속적으로 미군정에게 주지시켜 왔다는 걸 이 문서를 통해서 확연하게 알 수 있다고 이렇게 볼 수 있겠음

◆ 박귀빈
: 그렇음
: 이전부터 울릉도 주민들, 우리나라 주민들이, 국민들이 독도에서 조업해 왔다는 것도 명확하게 당연히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이고, 경북도지사, 울릉도사 같은 그들의 문서도 있음
: 그런데 일본은 그동안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을 했음
: 그리고 이들도 어찌 됐건 간에 근거를 들기는 함
: 1949년에 '시볼트 제안', 1951년 '러스크 서한'을 근거로 한다고 하거든요. 이들의 주장도 한번 정리해 주시죠

◇ 전갑생
: 49년 시볼트나 아니면 러스크 서한 같은 경우에는 주로 보면 국무부의 입장, 쉽게 말하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임

◆ 박귀빈
: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일본과 미국 사이에 체결한 조약이죠?

◇ 전갑생
: 그래서 그 조약하는 과정에서 국무부에서 독도를 비롯한 일본의 어떤 수역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모호한 표현이 있는 것임
: 독도에 대한 부분을 한국의 영토라는 걸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모호하게, 그리고 혹은 독도에 대한 부분을 아예 빼고 영토 규정을 하는 과정들이 있음
: 그 과정에서 나오는 문제점이 뭐냐 하면, 실제 미국의 외교적인 어떤 언사, 즉 왜곡되는 언사가 결국에는 그게 확실하게 일본의 영토인 양 왜곡되게 폄하되던 부분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임
: 그래서 명확하게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실로 그래서 약간 모호한 표현이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음
: 그러나 한국 정부에서는 그 부분이 실질적으로 주권뿐만 아니라 조업하고 있거나, 그리고 그 이전에 관련한 어떤 보고서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외교적인 언사로서 왜곡되는 부분들을 지적하는 부분들이 되게 많았음

◇ 전갑생
: 그래서 그 부분들이 상당 부분 오랜 기간 동안에 뭐랄까요. 일본의 영유권에 대한, 독도의 영유권에 대한 부분에 일종의 활용되어 온 게 있었음

◆ 박귀빈
: 시볼트 제안, 러스크 서한 이렇게 돼 있기 때문에 다 사람 이름임
: 이들이 약간 친일적인 그런 방식으로 미국 정부에 이렇게 요청한 제안서인 거잖아요
: 독도는 얘네 땅, 약간 그런 느낌으로요. 제가 이해한 거 맞아요?

◇ 전갑생
: 그게 뭐냐 하면 러스크는 향후에 국무부 장관을 하는 사람임
: 그래서 기본적으로 일본에 대한, 대일 정책에 대한 거를 정리한 일종의 미국 관리들의 제안서라고 보시면 됨

◆ 박귀빈
: 개인들의 제안서 안에 그런 표현들이 있다는 거잖아요
: 이렇게 독도 영유권 분쟁이 있으니 양측 간에 우리는 일본 쪽에 힘을 실어주면 어떨까 이런 제안을 그냥 개인적으로 올렸다는 그런 말씀이신가요?

◇ 전갑생
: 네, 그런 부분임
: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에 대한 정책 속에서 한국이라는 부분은 그렇게, 한국의 어떤 방어나 보호라는 어떤 측면보다는 일본을 보호하고 점진적으로 재건해 나가는 어떤 입장들을 담아내는 거임
: 또 하나가 뭐냐 하면 한국전쟁 시기, 특히 러스크 이야기는 51년임
:. 한국전쟁 시기에 그리고 또 52년에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맺는 과정에 전쟁 와중에 그 부분들이 진행되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들이나 그 주체적인 어떤 부분들이 그렇게 반영되지 못하는 그런 상황도 있었다는 것임

◆ 박귀빈
: 그렇음
: 그래서 이번에 교수님께서 언급해 주고 계시는 그 문서는 미국 정부가 보관해 왔던 미공개 기밀 문서, 70년 동안 기밀 문서였다고 하는데 이번에 그중에 일부가 밝혀진 거고, 당시에 폭격 등 주요 사건 때 항상 사진, 영상 촬영 같이 했다고 전해지고 있음
: 그러면 이 자료에도 역시 당시에 참상이라든가 48년도 이 사건이 있었을 때 상황이라든가 이런 것도 정확하게 기록이 다 돼 있겠네요? 영상, 사진 이런 걸로요.

◇ 전갑생
: 현재 폭격과 관련, 폭격을 사격장으로 연습을 하다 보니까 보통은 B-29 20기 정도가 비행을 해서 폭격을 한 것임
: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훈련 경우에도 보면 이 B-29에는 사진 촬영병과 영상 촬영병이 항상 탑승을 하게 돼 있음
: 그래서 보통 보면 훈련하는 장면의 영상들이 미국 국가문서기록관리청(NARA) 문서보관소에 되게 많이 있음
: 제가 생각하기에도 향후에 추가로 발굴해야 될 부분이 그 당시에 48년 6월 8일에 실제 영상이나 혹은 특히 폭격과 관련한 사진은 현재 나와 있음
: 나와 있는데 영상 같은 경우에는 왜 중요하냐, 그때 당시 주민들과 초기에 언론 보도에는 뭐냐 하면 '폭격뿐만 아니라 기총소사도 했다'라는 증언이 있음, 주민들 중에
: 그래서 실제 그 영상을 확인해 보면 폭격 말고 추가로 기총소사를 해서 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총을 쐈는지도 확인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되기 때문에 향후 영상 발굴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됨

◆ 박귀빈
: 왜 미국에서 70년 동안 이걸 미국의 기밀 자료로 했을까도 그건 우리 입장에서 독도도 독도지만 우리 주민, 우리 국민에 대해서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도 알아볼 지점이긴 함

◇ 전갑생
: 맞음
: 그래서 기본적으로 훈련장으로 사용할 때 미리 그때 당시 미군정청, 그때 소장이었던 그 하지 중장에게 15일 전에 통보를 하게 돼 있음
: 근데 그 통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거, 결국에는 그래서 주민들이 다수가 희생이 되는 그런 경우잖아요
: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조종사의 과실과 또 통보하지 않은 부분들이 명확하기 때문에 처벌을 받게 됐던 거고요
: 그렇게 된다면 폭격뿐만 아니라 기총소사까지 이루어졌다는 그 부분들은 명확하게 밝혀질 수 있는 부분은 결국은 영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듦

◆ 박귀빈
: 또 미국 문서실 보러 가실 예정이라고 들었음

◇ 전갑생
: 다음 주 목요일 정도 가게 될 예정임
: 이번에는 꼭 독도와 관련한 부분은 아니긴 함
: 한국사의 특히 근현대사, 특히 현대사 쪽에 이런 독도 폭격뿐만 아니라 또 52년에도 또 독도 폭격 사건으로 인해서 또 있었기 때문에,
: 그래서 독도에 대한 앞으로의 어떤 연구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더 이 부분들을 인식하기 위해서라면 어려운 문서보다는 다양한 시각을 볼 수 있는 사진이라든지 영상을 통해서
: 더 독도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일본에서 꾸준하게 이런 영유권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새로운 문서도 나와 있는 마당에, 앞으로 독도에 대한 관심을 더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생각이 듦

◆ 박귀빈
: 교수님은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의 연구교수로 계신 건데 독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관련한 역사적인 사료들을 찾으시는 건가요? 연구하시는 건가요?

◇ 전갑생
: 네, 그래서 이번에 가면은 여순 사건뿐만 아니라 제가 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게 한국전쟁 시기에 포로수용소나 포로와 관련된 것, 그리고 민간인 학살이라든지 약간 그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냉전기에 가려져 있는, 숨겨져 있는 이런 관련한 것들에 대한 자료들을 발굴해서 논문도 쓰고 책도 내고, 최근에는 폭격과 관련한 책도 내고 이러긴 했음

◆ 박귀빈
: 이번에 교수님이 발굴하신 이 소중한 자료를 기증하셨음, 동북아역사재단에
: 이 기증하신 이유도 있으실 것 같고요, 일반 대중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우리 역사에 대해서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음
: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림

◇ 전갑생
: 이 자료를 기증하게 되는 거는 결국에는 제가 꼭 독도를 연구하는 그게 아니라 이미 독도를 연구해 오는 연구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활용되었으면 하는 거,
: 두 번째로는 일반 시민들도, 국민들도 이해할 수 있게끔 다양한 전시로 활용이 되어서 더 독도에 대한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임
: 이 ‘독도 문제’는 국가주의나 혹은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 최소한의 역사적인 팩트 속에서, 그리고 또 이 독도 폭격의 과정 속에서 일어났던 진실에 대한 부분들을 더 파헤쳤고 그걸 또 정립하고 그걸 정리하는 차원에서 독도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속에서,
: 앞으로도 그와 관련된 자료가 나오면 계속 또 기증할 생각임

◆ 박귀빈
: 지금까지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전갑생 연구교수였음, 고맙습니다.

◇ 전갑생 : 고맙습니다.

○ 링크 - 독도는한국땅미국극비문서찾아낸교수[YTN, 202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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