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수토 역사 거점 삼척, 독도 수호 메카로 육성해야”[강원도민일보, 2024.07.22.]

  • 등록: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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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 수토 역사 거점 삼척, 독도 수호 메카로 육성해야”
[강원도민일보, 2024년 7월 22일]

○ 올해 학술대회는 ‘이사부와 삼척, 그리고 독도’를 주제로 개최

- 이사부의 울릉도 복속 출항지이자, 수토의 총괄 지역이었던 삼척에 대한 역사적 학술 연구를 심화시키기 위해 마련됐음
: 1500년 전 신라시대 우산국(울릉도, 독도)을 우리 영토로 복속시킨 이사부 장군의 역사적 의미와 해양개척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학술대회임
: 지난 19일 삼척시 정하동 이사부독도기념관에서 열렸음
: 학계와 지역사회에서는 동해안 해양사에서 다양한 논거를 발굴, 제시함으로써 ‘우리 땅 독도’의 가치를 일깨우고, 동해 영토사에 확고한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음

○ 연구진들의 기조강연과 주제발표

◇ 기조강연: 독도 수호의 길, 왜 이사부와 삼척인가

- “진동루 복원으로 역사문화적 가치 제고를”
손승철 한국이사부학회장(강원대 명예교수)

-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서기 512년 6월, 우산국을 복속하기 위한 이사부 선단이 육지를 출항했고 성공했음
: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수토의 역사를 살펴볼 때 삼척사람들은 울릉도, 독도를 비롯해 동해 수호의 주역이라 할 수 있음
: 여러 역사적 사실들은 삼척이 독도 수호의 구심점이 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당위성을 말해주고 있고, 그런 이유로 최근 삼척에 ‘이사부독도기념관’이 건립됐음
: 삼척시는 이사부 독도기념관의 전문성을 위해 동북아역사재단과 국사편찬위원회,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이사부학회 등 관련기관과 견고한 자문 및 협력 관계를 맺고, 명실공히 독도 수호 및 전시 홍보의 허브 역할을 선도해 나가야 함

- 삼척시가 대한민국 독도 수호의 메카가 되기 위해
: 이사부 독도기념관 건립 후속 사업으로, 이사부 동상을 건립하고 우리나라 수군기지의 3대 상징 중 하나인 진동루(鎭東樓)를 복원해야 함
: 남해의 진남관은 국보 제34호로, 서해 진서루는 충남도유형문화재 제65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부끄럽기까지 한 일임
: 하루 빨리 진동루를 복원하고 삼척포진성을 다시 쌓아 역사문화적 가치를 제고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해 나가야 함
: 여기에 서둘러 오화리 산성을 발굴하고, 산성의 일부라도 복원하는 등 이사부 벨트 완성을 위해 나아가야 함

◇ 주제발표 1. 동해지역 해방(海防)과 삼척포진(三陟浦鎭)

- “동해 수군기지 삼척, 울릉도 수토임무 관장”
: 장정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삼척은 큰 산과 바다가 만나는 강원 영동의 요충지임
: 영동 지역은 함경도와 경상도를 잇는 연결고리였고, 또 바닷길에 의한 일본과의 접촉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한 곳이기도 했음
: 특히 삼척은 고대에 함경도를 통해 남하하는 고구려와 북상하는 신라의 세력이 충돌하던 실직국이 존재했던 곳이기도 함
: 신라의 실직국 및 우산국 복속은 바닷길을 통한 고구려와 왜의 연계를 차단하려는 목적에서 이뤄졌다는 견해도 있음

- 고려·조선시대에는 동해를 통한 외부 세력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고, 삼척은 해방(海防)의 중진(重鎭)임
: 그럼에도 동해안은 서·남해안에 비해 해양을 통한 위협이 크고 빈번하지 않았음
: 그럼에도 해양을 통한 위협이 상존한다는 인식은 유지돼 영동지역에 수군진관이 따로 편성됐고, 그 중심에 삼척 포진이 있었음
: 그만큼 삼척은 동해 해방에서 중요한 곳이었다고 할 수 있음
: 일본 에도막부가 성립한 후로는 외교적인 경로의 교섭이 가능해 지면서 왜구도 많이 줄었음
: 다만, 군사적 위협이 적어졌다고 해서 수군의 임무를 방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표류민 문제처럼 예민한 사안을 관장할 직책은 필요했음
: 결론적으로 삼척포진의 첨제절사를 겸한 삼척영장의 해방 관련 임무는 울릉도 수토를 관장하는 것으로 귀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 주제발표 2. 사로국의 동해안 진출과 대외정책

- “동해 해상교역망 장악 차원 실직국 흡수”
: 홍영호 하슬라문화재연구소장

- ‘삼국사기’ 파사왕 23년(102)의 음즙벌국과 실직곡국의 쟁강 기사는 사로국(신라)의 동해안 진출과 관련해 매우 중요함
: 음즙벌국은 안강-포항(흥해 포함) 일대이고, 실직곡국은 삼척의 실직국과 동일한 실체임
: 실직국이 해상교역을 위한 거점 및 중계지를 관리·운영하기 위해 안강-포항 일대에 이입시킨 실직국인이 ‘실직곡국’으로 기술된 것을 해석했음
: 동해·삼척 지역의 고고자료에서 이 시기에 해당하는 영남지방의 전형적인 기종의 토기(와질토기)들이 거의 없어 이 기사의 발생 시기는 3세기 이후에 발생한 것으로 보았음
: 사로국에 의해 실직국이 복속된 것으로 나오지만, 그 역사적 실상은 사로국이 동해안 해상교역권을 장악하였고, 사로국 중심의 교역망 대상에 삼척의 실직국이 포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음
: 결국 사로국은 그들이 주도하는 동해안 해상교역망을 구축하려는 정책 차원에서 음즙벌국과 실직곡국의 쟁강 문제를 처리한 것으로 볼 수 있음

◇ 주제발표 3. 울릉도 설화에 나타난 이사부 인식

- “우산국 최후 관련 ‘나무사자’ 전술로 언급”
: 이학주 한국문화스토리텔링연구원장

- 이사부 관련 설화는 의외로 많이 전승되지 않고 있음
: 다만 이사부 설화의 전승양상을 살펴보면 대부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바탕을 두고 향유되고 있으며, 지역도 극히 제한적임
: 이사부가 가진 명성에 비해 설화 향유는 잘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음
: 원인은 분명하지 않음
: 울릉도 설화에 나타난 이사부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 이사부는 강릉의 대성황사 12신 가운데 1인으로 있었지만, 강릉 출신이 아니고 무신이어서 범일국사에게 밀려 신의 반열에서 탈락했음
: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강릉지역에서는 이사부에 관한 신화와 전설이 향유되지 못했음

- 울릉도에서는 몇몇 설화가 전승되고 있음
: 울릉도 골개 포구에 사자바위라는 바위가 있고, 그 옆에 사자굴이 있으며, 사자바위를 굽어보는 투구같이 보이는 투구바위가 있음
: 국수를 널어 놓은 것 같이 보이는 국수바위가 있고, 국수바위에서 태하로 가는 도중에 나팔봉이 있음
: 여기 있는 사자바위·투구바위·나팔봉은 모두 우산국의 최후를 전해주는 지명이고, 바위들이라고 함

- 울릉도 사람들은 이사부에 관한 인식이 크게 좋지 않았음
: 우산국이 망한 원인을 우해왕의 실정에 두었고, 이사부는 아주 미약하게나마 ‘꾀’인 전술 전략에 초점을 두고 구술하고 있음
: 이사부가 나무 사자 꾀를 썼을 때도 우해왕이 우산국 백성을 위한 마음에서 항복한 것으로 처리했음

◇ 주제발표 4. 근대 울릉도와 동해를 둘러싼 한일 어업문제

- “조선정부 일본인 불법 침입·벌목 강력 대응”
: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1883년 3월 고종은 동남제도개척사에 참의교섭통상사무 김옥균을 임명했음
: 김옥균은 이후 일본인의 울릉도 불법 벌목을 금지시키고 울릉도의 목재를 판매하기 위해 노력했음
: 김옥균 등은 울릉도에 불법으로 밀항한 덴주마루호를 조선과 일본 정부에 고발해 억류시켰음
: 그 결과 조선 정부는 1883년 덴주마루호 선장 무라카미 도쿠하치가 불법으로 울릉도에 기항해 목재를 일본으로 가져가자 조일통상장정 제33관에 근거해 주한 일본공사에게 처벌할 것을 요구했음
: 조선 정부는 일본 정부가 울릉도에 불법 침입한 일본인을 법에 따라 처벌하고 재판문서를 보내주도록 요구했음
: 일본 정부는 1886년 울릉도 목재를 공매한 금액과 불법 일본인의 벌금을 모두 조선 정부에 배상했음
: 그럼에도 1888년 일본인은 여전히 울릉도에 불법 침범했음

- 그 당시 울릉도장 서경수는 일본인이 울릉도에서 전복을 채취했고 울릉도에서 화물의 매매를 불법이라고 규정짓고 처벌을 요구했음
: 조선 정부는 울릉도에서 일본인의 거주와 매매를 엄격히 금지했음

○ 링크 - 이사부와삼척그리고독도학술대회[강원도민일보,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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